곡성 공무원의 비극, 뒤에는 악마가 있었다
[기자의 눈] 각자도생은 불가능하다
처음에는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뉴스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나라에서, 투신자살하다 행인과 충돌하는 일이 왜 없겠는가? 그런데 이후에 쏟아지는 뉴스를 보면서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 끔찍한 비극의 배후에 진짜 '악마'가 있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난 5월 31일 오후 9시 48분쯤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 한 아파트 입구. 전남 곡성군청 홍보팀 7급 공무원 양대진(39) 씨는 야근을 마치고 나서 집으로 귀가하던 길이었다. 아파트 근처 정류장에서 만삭의 아내 서 아무개(36) 씨와 여섯 살 아들도 만났다. 그 순간에 하늘에서 벼락같이 투신자살하던 유 아무개(26) 씨가 양 씨를 덮쳤다.
아파트 20층 복도에서 투신한 대학생 유 씨는 "나는 열등감 덩어리" "내 인생은 쓰레기" "주위 시선이 신경 쓰여서 보는 공무원 시험, 외롭다" 등이 쓰인 A4 두 장 분량의 유서를 남겼다. 복도에는 그가 마셨을 것으로 추정되는 절반쯤 마시다 만 소주병도 있었다. 술기운을 빌려서 뛰어내린 것이었다. 애초 그가 살던 아파트도 아니었다.
양 씨는 제약회사에서 일하다 2008년 늦깎이 공무원이 되었다. 장래가 불안한 사기업보다는 공무원 신분이 좀 더 나으리라 판단했으리라. 경기도 여주에서 일하다 2011년에는 아내의 고향인 곡성군으로 근무지도 옮겼다. 직장에, 가정에 성실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내년(2017년)에는 입주도 할 예정이었다.
자신의 삶에 진지했던 한 남자와 그의 평온한 가정을 순식간에 망가뜨린 유 씨를 변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번 사건을 의지력이 박약한 한 청년의 '경솔한 선택'이 초래한,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비극으로 접근하는 데는 반대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에서 어쩌면 나도 오늘 집에 가는 길에 양 씨 같은 사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칠게 생각을 나열하면 이렇다. 유 씨가 (유서를 토대로 봤을 때) 내키지도 않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된 데는 청년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또 실패도 허용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구조가 있었다. 양 씨가 그 엄혹한 구조를 비교적 잘 극복한 것과는 달리, 유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수세에 몰려 있었다.
양 씨는 어떤가? 어쩌면 곡성에서 광주로 오는 막차 안에서 그는 자신의 평온한 삶에 새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지 모른다. '나는 잘해 왔어!' 구조가 끊임없이 발목을 잡으며 자신을 넘어뜨리려 해도 그때마다 잘 극복해 왔다고. 이대로만 가면 된다고. 하지만 그만 잘하는 것만으로는 그의 삶은 지켜질 수 없었다.
바로 이 대목이 중요하다. 한국 사회는 각자도생을 강요한다. 상당수는 양 씨처럼 살아남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혼자서만 잘해서는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살아남지 못한 혹은 살아남을 자신이 없는 이웃의 삶이 언제 어디서 자신의 삶과 겹쳐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유 씨의 삶이 양 씨의 삶과 겹치며 두 삶을 끝장낸 것처럼.
나는 이 비극적인 사연을 보면서, 모두가 다 단지 잘살아 보려고 안간힘을 썼을 뿐인데 결국은 죽고 죽이는 끔찍한 지옥도가 결말이었던 박찬욱 감독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번에 죽은 양 씨가 그토록 홍보에 공을 들였다는 영화 <곡성>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악마도 떠올렸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복수를 꿈꾸는 악마가 우리 삶에 똬리를 틀고 너와 나의 바로 옆에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악마는 다름 아닌 각자도생의 삶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속절없이 스러져간 서른아홉과 스물여섯 두 삶의 명복을 빈다.
지난 5월 31일 오후 9시 48분쯤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 한 아파트 입구. 전남 곡성군청 홍보팀 7급 공무원 양대진(39) 씨는 야근을 마치고 나서 집으로 귀가하던 길이었다. 아파트 근처 정류장에서 만삭의 아내 서 아무개(36) 씨와 여섯 살 아들도 만났다. 그 순간에 하늘에서 벼락같이 투신자살하던 유 아무개(26) 씨가 양 씨를 덮쳤다.
아파트 20층 복도에서 투신한 대학생 유 씨는 "나는 열등감 덩어리" "내 인생은 쓰레기" "주위 시선이 신경 쓰여서 보는 공무원 시험, 외롭다" 등이 쓰인 A4 두 장 분량의 유서를 남겼다. 복도에는 그가 마셨을 것으로 추정되는 절반쯤 마시다 만 소주병도 있었다. 술기운을 빌려서 뛰어내린 것이었다. 애초 그가 살던 아파트도 아니었다.
양 씨는 제약회사에서 일하다 2008년 늦깎이 공무원이 되었다. 장래가 불안한 사기업보다는 공무원 신분이 좀 더 나으리라 판단했으리라. 경기도 여주에서 일하다 2011년에는 아내의 고향인 곡성군으로 근무지도 옮겼다. 직장에, 가정에 성실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내년(2017년)에는 입주도 할 예정이었다.
자신의 삶에 진지했던 한 남자와 그의 평온한 가정을 순식간에 망가뜨린 유 씨를 변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번 사건을 의지력이 박약한 한 청년의 '경솔한 선택'이 초래한,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비극으로 접근하는 데는 반대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에서 어쩌면 나도 오늘 집에 가는 길에 양 씨 같은 사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칠게 생각을 나열하면 이렇다. 유 씨가 (유서를 토대로 봤을 때) 내키지도 않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된 데는 청년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또 실패도 허용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구조가 있었다. 양 씨가 그 엄혹한 구조를 비교적 잘 극복한 것과는 달리, 유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수세에 몰려 있었다.
양 씨는 어떤가? 어쩌면 곡성에서 광주로 오는 막차 안에서 그는 자신의 평온한 삶에 새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지 모른다. '나는 잘해 왔어!' 구조가 끊임없이 발목을 잡으며 자신을 넘어뜨리려 해도 그때마다 잘 극복해 왔다고. 이대로만 가면 된다고. 하지만 그만 잘하는 것만으로는 그의 삶은 지켜질 수 없었다.
바로 이 대목이 중요하다. 한국 사회는 각자도생을 강요한다. 상당수는 양 씨처럼 살아남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혼자서만 잘해서는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살아남지 못한 혹은 살아남을 자신이 없는 이웃의 삶이 언제 어디서 자신의 삶과 겹쳐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유 씨의 삶이 양 씨의 삶과 겹치며 두 삶을 끝장낸 것처럼.
나는 이 비극적인 사연을 보면서, 모두가 다 단지 잘살아 보려고 안간힘을 썼을 뿐인데 결국은 죽고 죽이는 끔찍한 지옥도가 결말이었던 박찬욱 감독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번에 죽은 양 씨가 그토록 홍보에 공을 들였다는 영화 <곡성>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악마도 떠올렸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복수를 꿈꾸는 악마가 우리 삶에 똬리를 틀고 너와 나의 바로 옆에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악마는 다름 아닌 각자도생의 삶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속절없이 스러져간 서른아홉과 스물여섯 두 삶의 명복을 빈다.
남의 삶을 망칠 의도는 없는 청년이 결국은 이런 큰죄를 지은걸보며 나도 많은생각을 했다.
정말 매순간 열심히 살고 의도적이든 아니든 남에게 상처주는일 없게 해달라고 빌어보며
솔직히 정말 사는게 너무 무서울때가 많다. 그래서 주님을 더 사랑하게 되는것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