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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로운 아버지의 마음으로 생명의 신비를 경축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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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여러분,

1. 5월 1일은 제6회 생명주일입니다. 생명주일은 잉태되는 순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되새기며 생명을 지키고 사랑하고 존중할 것을 다짐하는 날입니다. 나아가 우리 사회에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는 죽음의 문화에 맞서 생명의 문화를 증진하기 위해 선의의 모든 이와 힘을 합쳐 노력할 것을 천명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2. 인간 생명을 포함해 모든 생명은 경축해야 할 신비입니다. 색안경을 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생명을 바라본다면, 생명은 결코 부담스러운 짐이거나 거추장스러운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신비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140항 참조). 길섶에 피어나는 이름 모를 들꽃을 보았을 때 절로 탄성이 나올진대, 인간 생명에 대해서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창조주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 생명의 탄생은 실로 저 우주의 탄생에 못지않습니다. 해산의 고통을 뒤로 하고 아기를 품에 안은 엄마에게 그 아기는 바로 우주일 것입니다. 인간 생명은 그토록 존엄합니다.

3. 하지만 신비로 경축해야 할 존엄한 인간 생명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심지어는 가정에서까지 위협을 받고 있을 뿐 아니라 무참히 살해되기까지 합니다. 부주의나 태만으로 인한 인명 사고는 말할 것도 없고 이기심과 증오, 시기와 질투, 편의주의와 배금주의가 빚어내는 생명 파괴가 우리 사회를 신음하게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날마다 낙태가 수없이 자행되는 것은 물론이고 최근에는 귀찮고 거추장스럽다는 이유로 아동학대와 존비속 살해가 잇따르고 있어 충격을 더하고 있습니다.
단지 편의를 위해 또는 돈을 위해 생명을 거스르는 음모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는 그릇된 행태가 은밀하게 때로는 공공연하게 시도되기도 합니다. 가톨릭교회를 비롯해 생명을 수호하는 이들이 ‘조기 낙태약’으로 규정하고 있는 소위 응급 피임약의 시판 허용도 그 하나입니다. ‘모닝 필’ ‘노레보정’ 같은 응급 피임약은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으로, 교회가 인간 생명으로 여기는 수정란 자체를 파괴하기도 하는 사실상의 낙태약입니다. 게다가 이 약의 복용은 여성의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건강한 성윤리와 생명윤리 의식을 실종시켜 종국에는 국민 전체의 윤리의식을 떨어뜨리게 할 것입니다.

4. 지난 1월에 법제화한 ‘호스피스 완화의료 및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이 법은 ‘존엄사법’ 혹은 ‘잘 죽는 법’이 아닙니다. 죽기 위한 법이 아니라 생명의 존엄성을 끝까지 유지하도록 하는 법, 마지막 순간까지 품위 있게 잘 살도록 도와주는 법이어야 입법 취지가 제대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기 환자들을 위한 완화 돌봄이 필요한 것입니다. ‘연명의료결정 제도’에 집착하기보다는 말기 환자들이 생의 마지막까지 존엄한 삶을 유지하도록 호스피스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한 법적 제도적 뒷받침을 강화하고 사회 문화적 분위기 조성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5. 다른 한편으로, 풍요로운 인류의 삶을 위한다는 첨단 과학 기술이 그 본래 취지와 달리 오히려 인간 삶을 위태롭게 할 수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바둑 대결은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인간 능력의 무한한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함께, 어쩌면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 로봇에게 오히려 인간 삶이 지배당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낳고 있습니다.
첨단 과학 기술이 큰 변화를 가져다 준 또 다른 영역은 미시 영역인 유전자 관련 분야입니다. 유전자 조작 기술은 선용하면 질병 치료 등 인간 삶에 큰 혜택을 줄 수 있지만, 잘못 사용했을 경우에 생기는 부작용은 훨씬 더 심각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는 기존의 유전자 조작 기술보다 훨씬 정교한 유전자 편집기술이 개발되어 이 분야에 대한 혁명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유전자 가위 기술을 이용해 유전체 형질을 변형시킬 때 특정 개체군의 멸종까지 야기할 수도 있다고 염려합니다. 이로 인한 생태계 혼란이 인간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예측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6.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는 생명에 관한 이 모든 문제는 우리에게 성숙한 지혜와 현명한 판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지혜와 판단은 생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쪽이어야 합니다. 가톨릭교회에는 이와 관련한 탁월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 이 시대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강조하신 “생태적 회개”입니다. 생태적 회개는 하느님과의 관계, 나 자신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는 물론, 자연 생태계와의 관계 나아가 사회 생태계와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통해 올바른 관계, 곧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뜻합니다( 「찬미받으소서」 216~221항 참조).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전 세계 가톨릭교회와 함께 자비의 해를 지내고 있습니다. 자비는 약하다고, 보잘것없어 보인다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함부로 대하고 짓밟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더욱 소중히 여기고 보듬어 안습니다. 그것이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입니다. ‘하느님 아버지처럼 자비로이’라는 자비의 해 모토처럼, 우리는 아버지의 자비로운 눈, 자비로운 마음으로 모든 생명을 바라보고 대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참으로 생명의 신비를 경축할 수 있으며, 죽음의 문화를 딛고 생명의 문화를 증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일에 우리 모두 함께합시다.

2016년 5월 1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이 용 훈 주교


CBCK 홈페이지 인용  http://www.cbck.or.kr/bbs/bbs_read.asp?board_id=k1200&bid=1301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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