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1627)
렘브란트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는 1627년에
성경의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배경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의 나이 21살에 이 주제로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 놀랍고,
화려한 옷의 장식과 안경 등을 세밀하게 표현한 것도 놀랍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떤 부유한 사람이 땅에서 많은 소출을 거두었다.
그래서 그는 속으로 곳간들을 헐어 내고 더 큰 것들을 지어,
거기에다 수확한 모든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두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많은 재산을 쌓아 두고,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기려고 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자신을 위해서는 재화를 모으면서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사람이 바로 이러하다.”(루카 12,16-21)
그런데 렘브란트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상상력 넘치게 재구성했다.
밤은 이미 깊었다.
부자의 인생도 밤처럼 끝자락에 있어 그의 목숨도 얼마 남지 않았다.
주름진 이마와 얼굴은 그의 황혼기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자의 눈은 오로지 돈에만 집중되어 있다.
안경을 낀 부자는 동전을 오른손에 쥐고 유심히 살펴본다.
재물과 관련된 문서들은 빈 곳이 없이 책상 가득히 쌓여 있다.
촛불의 빛은 동전을 들고 있는 오른손에 의해 가려졌다.
그 빛은 오로지 동전을 살피는 데에만 시용된다.
이것이 바로 지금 부자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인생의 황혼기에 들어선 부자가 오로지 물질에만 마음을 두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단 말인가?
부자의 책상에는 하느님의 심판을 상징하는 작은 저울이 있는데도
부자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채지 못한다.
그는 오로지 부에 대한 집착으로 밤늦게까지 돈만 세고 있다.
17세기의 네덜란드는 무역을 통해 황금기를 맞아 엄청난 부를 쌓았다.
동인도제도의 설립과 자유기업과 현대적인 금융제도는
네덜란드를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만들어주었다.
도시의 발달로 유럽에서 인구가 가장 많았고,
해양강국이었던 칼뱅주의의 네덜란드는
이 새로운 물질적 번영과 부를 하느님께서 내려 준 선물로 여겼다.
회화 속에도 그들의 부유함과 도덕적 엄격성이 그대로 반영되어
세상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바니타스 도상을
여러 작품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렘브란트가 그린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금화와 책들도
역사와 함께 사라질 허무한 것들을 대변한다.
그런데 부유한 네덜란드는 큰 딜레마에 빠졌다.
그들은 칼뱅주의적 경건함으로 근면과 성실과 검소함을 강조했지만,
물질적 번영을 누릴수록 나날이 '술집'만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물질적 부에 대한 경고를 내포하는 것은 아닐까?
또 자신을 위해 재물을 쌓으려 하면서도 하느님 앞에서는 부유하지 못한
렘브란트 자신에 대한 성찰은 아닐까?
성찰과 깨달음에 가장 적절한 것이 빛과 그림자의 효과이다.
렘브란트는 하나의 빛이 만들어내는 효과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동전을 들은 부자의 오른팔이 전경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안경테는 얼굴에 가느다란 검은 선을 그리고 있으며,
돈주머니 끈의 그림자는 책을 묶은 가죽 장정에 오묘한 형태로 나타났다.
또 촛불이 꺼질까봐 조심스럽게 손으로 가리고 있는 동작은
부자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나타내준다.
우리도 혹시 돈에 집착하여 그늘이 지는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물을 잃을까봐 늘 걱정을 하고 있지 않는가?
하느님께서 어리석음 부자에게 내린 판결은 죽음의 선고였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루카 12,20)
재물과 목숨은 한 순간에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하늘의 보화를 찾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하늘의 보화는 과연 무엇일까?
[출처]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 (1627) - 렘브란트|작성자 말씀과 성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