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은 없다. 프레시안

by 이승우(다니엘) posted Jun 0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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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곡성 공무원의 비극, 뒤에는 악마가 있었다

2016.06.02 15:37:30

[기자의 눈] 각자도생은 불가능하다
처음에는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뉴스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나라에서, 투신자살하다 행인과 충돌하는 일이 왜 없겠는가? 그런데 이후에 쏟아지는 뉴스를 보면서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 끔찍한 비극의 배후에 진짜 '악마'가 있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난 5월 31일 오후 9시 48분쯤 광주광역시 북구 오치동 한 아파트 입구. 전남 곡성군청 홍보팀 7급 공무원 양대진(39) 씨는 야근을 마치고 나서 집으로 귀가하던 길이었다. 아파트 근처 정류장에서 만삭의 아내 서 아무개(36) 씨와 여섯 살 아들도 만났다. 그 순간에 하늘에서 벼락같이 투신자살하던 유 아무개(26) 씨가 양 씨를 덮쳤다.

아파트 20층 복도에서 투신한 대학생 유 씨는 "나는 열등감 덩어리" "내 인생은 쓰레기" "주위 시선이 신경 쓰여서 보는 공무원 시험, 외롭다" 등이 쓰인 A4 두 장 분량의 유서를 남겼다. 복도에는 그가 마셨을 것으로 추정되는 절반쯤 마시다 만 소주병도 있었다. 술기운을 빌려서 뛰어내린 것이었다. 애초 그가 살던 아파트도 아니었다.

양 씨는 제약회사에서 일하다 2008년 늦깎이 공무원이 되었다. 장래가 불안한 사기업보다는 공무원 신분이 좀 더 나으리라 판단했으리라. 경기도 여주에서 일하다 2011년에는 아내의 고향인 곡성군으로 근무지도 옮겼다. 직장에, 가정에 성실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내년(2017년)에는 입주도 할 예정이었다.

자신의 삶에 진지했던 한 남자와 그의 평온한 가정을 순식간에 망가뜨린 유 씨를 변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번 사건을 의지력이 박약한 한 청년의 '경솔한 선택'이 초래한,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비극으로 접근하는 데는 반대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에서 어쩌면 나도 오늘 집에 가는 길에 양 씨 같은 사고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칠게 생각을 나열하면 이렇다. 유 씨가 (유서를 토대로 봤을 때) 내키지도 않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된 데는 청년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또 실패도 허용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구조가 있었다. 양 씨가 그 엄혹한 구조를 비교적 잘 극복한 것과는 달리, 유 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수세에 몰려 있었다.

양 씨는 어떤가? 어쩌면 곡성에서 광주로 오는 막차 안에서 그는 자신의 평온한 삶에 새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지 모른다. '나는 잘해 왔어!' 구조가 끊임없이 발목을 잡으며 자신을 넘어뜨리려 해도 그때마다 잘 극복해 왔다고. 이대로만 가면 된다고. 하지만 그만 잘하는 것만으로는 그의 삶은 지켜질 수 없었다.

바로 이 대목이 중요하다. 한국 사회는 각자도생을 강요한다. 상당수는 양 씨처럼 살아남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혼자서만 잘해서는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살아남지 못한 혹은 살아남을 자신이 없는 이웃의 삶이 언제 어디서 자신의 삶과 겹쳐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유 씨의 삶이 양 씨의 삶과 겹치며 두 삶을 끝장낸 것처럼.

나는 이 비극적인 사연을 보면서, 모두가 다 단지 잘살아 보려고 안간힘을 썼을 뿐인데 결국은 죽고 죽이는 끔찍한 지옥도가 결말이었던 박찬욱 감독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번에 죽은 양 씨가 그토록 홍보에 공을 들였다는 영화 <곡성>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악마도 떠올렸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복수를 꿈꾸는 악마가 우리 삶에 똬리를 틀고 너와 나의 바로 옆에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악마는 다름 아닌 각자도생의 삶을 강요하는 한국 사회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속절없이 스러져간 서른아홉과 스물여섯 두 삶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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