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온 편지

by 이현덕(야고보) posted Jan 2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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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보내온 김수환 추기경님의 편지

사랑하고 사랑하는 신부님... 수녀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에게 베푼 보잘 것 없는 사랑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사랑을 받으며, 선택된 자로 살아온 제가
죽은 후에도 이렇듯 많은 분들의 분에 넘치는 사랑을 받으니...
나는 행복에 겨운 사람입니다.
감사하며... 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들에게 생전에 하지 못한
마지막 부탁이 하나 있어
이렇게 편지를 보냅니다.

불교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라는 달은 안보고...
손가락만을 쳐다본다.‘

달은 하느님이시고, 저는 손가락입니다.
제가 그나마 그런대로 욕 많이 안 먹고 살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분의 덕분입니다.

성직자로 높은 지위에까지 오른 것도...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다 그분의 덕입니다.

속으로 겁이 나면서도...
권력에 맞설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다 그분의 덕입니다.

부자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유혹이 많았지만...
노숙자들과 함께 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다 그분의 덕입니다.

화가 나 울화가 치밀 때도...
잘 참을 수 있었던 것도...
다 그분의 덕입니다.

어색한 분위기를 유머로 넘긴 것도...
사실은 다 그분의 덕입니다.

나중에 내가 보고도 약간은 놀란 내가 쓴 글 솜씨도...
사실은 다 그분의 솜씨였습니다.

내가 한 여러 말들...
사실은 2천 년 전에 그분이 다 하신 말씀들입니다.
그분의 덕이 아닌...
내 능력과...
내 솜씨만으로 한 일들도 많습니다.

빈민촌에서 자고 가시라고 그렇게 붙드는 분들에게...
적당히 핑계대고 떠났지만...
사실은 화장실이 불편할 것 같아 피한 것이었습니다.

늘 신자들과 국민들만을 생각했어야 했지만...
때로는 어머니 생각에 빠져...
많이 소홀히 한 적도 있습니다.

병상에서 너무 아파...
신자들에게는 고통 중에도 기도하라고 했지만...
정작 나도 기도를 잊은 적도 있습니다.

이렇듯 저는 여러분과 다를 바 없는...
아니 훨씬 못한...
나약하고 죄 많은 인간에 불과합니다.

이제...
저를 기억하지 마시고 잊어주십시오.
대신...
저를 이끄신 그분...
죽음도 없고, 끝도 없으신 그분을 쳐다보십시오.

그분만이 우리 모두의 존재 이유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제가 마지막으로 남겼다는 말...

‘서로 사랑하십시오.’...

사실 제가 한 말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이십니다.

저는 손가락 일뿐입니다.
손가락을 보지 말고
그분을 쳐다보십시오.

천국에서 김수환 스테파노
(여기서는 더 이상 추기경이 아닙니다.)


                                                          - 글쓴이:김명순(스콜라스티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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